픽시(싱글기어) 자전거 씬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마치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스램(SRAM) 산하의 트루바티브(Truvativ)에서 출시했던 ‘옴니움(Omnium)’ 크랭크입니다. 비록 지금은 단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라이더의 자전거에 장착되어 있으며 중고 시장에서는 ‘명품’ 대접을 받으며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크랭크가 무엇이길래, 수많은 대체품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까지도 ‘국민 크랭크’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이 예쁘거나 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닙니다. 옴니움 크랭크는 당시 픽시 씬에 혁신을 가져온 기술력과 압도적인 성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시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식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강성’
옴니움 크랭크가 ‘국민’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강성(Stiffness)’입니다. 강성이란, 라이더가 페달을 밟는 힘이 얼마나 손실 없이 뒷바퀴로 전달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강성이 약한 크랭크는 힘껏 페달을 밟았을 때 미세하게 휘어지면서 힘의 손실을 유발하지만, 강성이 뛰어난 크랭크는 그 힘을 온전히 추진력으로 바꿔줍니다.
외장형 BB 시스템의 대중화
옴니움 이전의 픽시 크랭크들은 대부분 ‘사각 비비(Bottom Bracket)’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구조가 간단하고 클래식한 멋이 있지만, 구조적으로 강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옴니움은 당시 로드바이크나 MTB에서 주로 사용되던 ‘외장형 GXP 비비’ 시스템을 픽시 씬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선구자였습니다.
외장형 비비는 크랭크 축(스핀들)이 훨씬 더 굵고, 베어링이 프레임 바깥쪽에 위치하여 지지 기반이 넓어지는 방식입니다. 이는 사각 비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강성을 제공했습니다. 라이더가 페달을 밟는 순간, 그 힘이 조금의 뒤틀림도 없이 그대로 체인을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는 직관적인 반응성은 당시 라이더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만족감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순간적인 파워가 중요한 스트릿 라이딩이나 트랙 경주에서 옴니움의 단단함은 독보적인 장점이었습니다.
항공기 소재, 7050 알루미늄의 힘
옴니움 크랭크의 단단함은 소재에서도 비롯됩니다. 일반적인 알루미늄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자랑하는 7000번대 알루미늄 합금(AL-7050-T6)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라이더의 강력한 페달링에도 크랭크암이 휘거나 변형되는 것을 막아주어, 힘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프로급 성능, 그러나 접근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소수의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는 초고가의 부품이었다면 ‘국민’이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옴니움 크랭크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프로급 성능을 아마추어 라이더들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만든 합리적인 가격 정책에 있었습니다.
당시 옴니움과 성능적으로 비교될 만한 대상은 경륜 선수들이 사용하는 일본의 ‘스기노 75(Sugino 75)’나 시마노의 ‘듀라에이스(Dura-Ace)’ 트랙 크랭크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지만, 가격 또한 매우 높아 일반 라이더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크랭크 | 주요 특징 | 가격대 (당시 기준) |
스램 옴니움 | 외장형 GXP 비비, 7050 알루미늄, 뛰어난 강성 | 중고가 (20~30만 원대) |
스기노 75 | 사각 비비, NJS 인증, 최고의 강성 | 고가 (크랭크암, 비비, 체인링 별도 구매 시 50만 원 이상) |
듀라에이스 트랙 | 옥타링크 비비, 시마노의 기술력 | 고가 (40~50만 원대) |
옴니움은 이러한 하이엔드급 크랭크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성능을 보이면서도, 가격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전용 GXP 비비까지 포함된 가격이었기 때문에, 가성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입문용 자전거에서 처음으로 업그레이드를 고민하는 학생 라이더부터, 합리적인 가격에 최상의 성능을 원하는 실력자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포지셔닝이 바로 옴니움을 ‘국민 크랭크’로 만든 두 번째 이유입니다.
업그레이드의 즐거움, ‘BCD 144’ 규격의 표준화
옴니움 크랭크는 단순히 제품 자체의 성능을 넘어, 픽시 씬 전체의 부품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BCD 144mm’ 규격의 대중화입니다.
BCD(Bolt Circle Diameter)는 체인링을 크랭크암에 고정하는 볼트 5개의 가상 원 지름을 의미하는데, 이 규격이 맞아야만 서로 다른 브랜드의 체인링을 호환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BCD 144mm는 본래 전문적인 트랙 경주용 부품들이 사용하던 표준 규격이었습니다. 옴니움이 이 규격을 채택하면서, 수많은 라이더들이 자신의 자전거에 프로급 체인링을 장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라이더들은 옴니움 크랭크를 베이스캠프 삼아, 스기노 젠(Sugino Zen), 로터(Rotor) 등 다양한 디자인과 성능을 가진 애프터마켓 체인링으로 교체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옴니움은 단순히 좋은 부품 하나에 그치지 않고, 라이더들에게 ‘튜닝’과 ‘업그레이드’라는 새로운 문화를 선사한 것입니다.
단종,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설
스램 옴니움 크랭크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명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독특한 GXP 비비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문제나 자가 정비의 어려움과 같은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옴니움이 픽시 씬에 남긴 유산은 매우 큽니다. 외장형 비비의 압도적인 강성을 대중에게 알렸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프로급 성능을 누릴 수 있게 했으며, BCD 144라는 표준을 통해 업그레이드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국민 크랭크’라는 별명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준을 제시하고 문화를 이끌었던 혁신적인 제품에 대한 라이더들의 존경과 애정이 담긴 칭호인 것입니다.
